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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의 목적 - 자연의 心

100세 시대 건강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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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2.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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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_16.jpg 요가_17.jpg요가_18.jpg   송정민 원장 (요가와 만남 저자)

 

제3단계 디아나(Dhyana) 정려(靜慮) 명상

 

디아나라는 단어는 지성(知性)을 의미하는 어근 ‘dhi'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명상이라고 하는 어휘에는 지력 또는 마음이 어느 한 곳으로 흐르게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디아나는 하나의 대상에 관하여 동일한 사념(思念, 근심,걱정)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한 사념이 약해지기 전에 동일한 새로운 사념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식으로 매우 빠르게 이어진다. 디아나가(冥想:고요히 눈을 감고 생각함) 다라나(集中)와 다른 점은 바로 이 연속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경전에서는 명상과 집중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즉 기름을 부을 때와 물을 부을 때 보이는 양상의 차이인데 둘 다 한 곳으로 부어 지기는 하지만 물의 흐름은 단속적임에 반해 기름의 그것은 지속적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어떤 느낌의 흐름은 내적으로 관조하면 생각의 흐름이 시작되고 유지되고 소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상념이 태어나고 변화하여 사라진 후에 다시 새로운 상념이 떠오를 때 까지의 상념과 상념 사이는 공허한 틈이 있으며 이 틈을 점차 확대하여 가면 쉴 사이 없이 일어나려는 상념을 누를 수가 있다. 이 틈, 즉 공백 상태를 정려(精慮)라고 한다. 운동과 운동 사이, 호흡과 호흡 사이, 욕구와 욕구 사이, 말과 말 사이의 침묵, 생(生)과 사(死)의 사이 또는 공백이 정려가 흐르는 시간이다.


응념(凝念)과 정려(精慮)는 서로 상대적인 면이 있다. 응념(凝念)과 상념(想念)을 단순화하려 하지만 정려는 그 상념을 진전시킨다. 응념이 수직적이라면 정려는 수평적이다. 응념이 구심적이라면 정려는 원심적이다. 응념은 단순한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만 정려는 응념으로 터득한 명확한 대상을 시간적으로 길게 그리고 폭넓게 적용하여 상념의 흐름을 확대하는 것이다. 즉 넓은 시야의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의 시야가 넓어지는 것 때문에 상념의 힘이 흐려져서 하나의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약화하여 이미지가 흐려진다면 정려가 아니다.


꽃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꽃의 전체적 상징성이 명료해지는 것이 응념이며 그 꽃의 선명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색체, 모양, 향기, 그 생산자, 가지고 온 사람, 신선도 등을 끝없이 상념을 계속하여 확대하여 이어져 가는 것이 정려이다. 1응념은 12호흡을 뜻하고 12응념이 1정려라 한다. 바로 그 정려의 종점을 선정(禪定:산란한 마음이 멈추는 것)이라고 하며 삼매(三昧: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대상만이 빛을 발하는 상태)의 경지에 접어든 첫 표시이다.

 

제4단계 사마디(Samadhi) = 삼매(三昧) 초월의식


사마디라는 글자는 sa(함께)+ma(완전히)+dhi(붙들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국 “완전히 함께” 있음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사마디가 디아나와 다른 점은 여기서는 어떤 세상에 대해 동일한 사념 파동이 지속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아(自我:자기 자신, 사고, 의식)가 그 대상 속으로 흡수되어 버리거나 그것과 완전히 동일화 된다는 것이다.


집중이 고조되면 명상이 되듯이 명상이 극에 달하면 초월의식에 다다른다. 명상 중에는 오직 마음과 대상만이 의식되는데 여기서 명상이 강렬해지면 마음과 대상이 서로 혼용(混用)하여 마음은 더는 그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이처럼 주체와 객체가 함께 녹아들어 상호간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사마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마디 첫 단계이다. 사마디라고 하는 단어는 사실 몇 단계의 더 높은 의식 상태들을 총괄하는 용어이며, 의식이 진보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심원해져서 결국은 완전한 자기인식의 상태에 이른다. 사마디의 단계들은 의식이 그것의 근원인 진아(眞我:참모습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정신적인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마디(三昧)는 해탈의 경지이며 지혜가 얻어지는 진아(眞我)의 경지이다. 파타자리의 요가 경(經_YOGA-SUTRA)에 의하면 “삼매란 한 곳에 집중된 선정(禪定 :산란한 마음이 멈추는 것)이 그 대상만이 빛나고 자기 자신은 없어진 것이 된 상태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깨달음의 경지라고 본다. 가장 깊고 바르게 깨우치려면 무슨 생각을 하든지 또는 무슨 행동을 하든지 간에 주체적 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그 대상 자체만 살아서 빛나게 된다. 사적인 이익이나 집착이 개입되면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자기식으로 보기 때문에 객관적 사고에서 벗어나 편견이 되어 오해가 발생한다.


오해나 편견은 지혜일 수 없다. 정려의 깊은 단계에서는 관념(觀念:견해나 생각)의 흐름이 모두 소모되어 버리고, 스스로 종말에 이르며 이 상태에서는 더욱 근본적으로 높은 능력이 발휘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지가 삼매의 상태인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합일(合一)되고 상념의 대상은 그것 자체로 존재하며 그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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