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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6.0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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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경승2.jpg
두경승 장군과 부인 김해김씨의 묘. 사당부터 묘지로 가는 길이 정비되어 있지 않으며,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안내문도 찾아볼 수 없다.


- 금산분교 인근 두경승 장군 사당과 묘역 향토문화재로 관리해야 

- 중구청, 지역유산가치활용 용역 시행 · 금년 중 지역유산 지정 계획


고려 중기 무신시대 문하시중을 지낸 두경승 장군의 사당과 묘지가 방치되고 있어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많다. 특히 역사시대(삼국시대~조선시대)의 유산이 많지 않은 영종지역에서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두경승 장군의 사당 보국재는 영종초등학교 금산분교 인근(백운로414번길 83-36)에 위치해 있으며, 장군과 부인의 묘는 200m 정도 떨어진 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두경승(미상 ~ 1197년) 장군은 고려 무신정권 시기의 무장으로, 3기 무인정권의 수장인 이의민의 경쟁자였다. 명종의 신임으로 문하시중이 되어 명종을 가까이 보필해오다가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쥔 최충헌에 의해 명종은 폐위되고 두경승은 자연도(영종도)로 유배를 와 두 달 만에 울분을 못이겨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173년(명종 3) 김보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두경승은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민심을 수습하였고, 이듬해 서경유수 조위총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서북면병마사를 거쳐 상장군지어사대사(上將軍知御史臺事)로 승진하고, 이어 공부상서, 호부상서, 추밀원부사, 참지정사, 평장사, 문하시중, 중서령(中書令) 등의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두경승은 잇단 무신정변 때 다른 무인들과 달리 홀로 전문(殿門)을 지키면서 남의 재물을 조금도 빼앗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두경승 사당은 현재 쓰레기 더미에 둘러싸인 채 열쇠로 잠겨있고 사당 안에는 여러 마리의 개가 돌아다니고 있다.

 

두경승1.jpg
두경승 장군 사당이 있는 보국재는 각종 쓰레기가 가득하고 건물 안에는 쇠 철망으로 된 개집이 길게 설치되어 있어 개 사육장을 방불케하고 있다.

 

사당 앞에는 쓰레기로 가득찬 차량이 방치되어 있으며, 연탄재와 냉장고 등 각종 생활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실정이다. 사당 옆에는 쇠 철망으로 된 개집이 연결되어 있고 개가 짖어대며 사육장을 방물케 하고 있다. 이웃 주민은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살고 있으나 그를 본지는 한참 되었다고 한다. 

 

두경승 장군의 묘로 가는 길도 험하다. 금산분교 옆길로 울타리를 넘고 도랑을 건너 무성하게 엉켜있는 풀을 헤치며 험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무덤이 나온다. 산 위쪽으로 무덤 지킴이 무인석, 문인석 그리고 망주석이 보인다. 두경승 장군과 부인 김해김씨의 묘다. 기본적인 형태는 비교적 잘 가꾸어져 있으나 무덤 곳곳에는 파인 흔적이 있고 흔한 설명표지도 하나 없다. 

 

이같이 방치된 두경승 유적에 대해 우선 사당 입구에 안내판을 세워서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인천시나 중구가 향토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중구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두경승 장군 유적을 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해 종중 관계자와 협의와 함께 지역유산가치활용 용역을 시행했고, 올해 지역유산으로 지정할 계획”이라며 “아울러 심층 조사연구를 통해 국가유산청이나 인천시의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방법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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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두경승 장군 유적 보존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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