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여행으로 90개국을 누빈 운서동 남석훈·양문심 부부의 기록
- 정년 이후 20년간 세계 여행하며 ‘지도 위 빈칸 채워’
2004년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첫 자유여행은 말레이시아로 이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이 작은 출발이 스무 해를 건너 90개국으로 이어질 줄은. 올해만도 네 나라를 더 보탤 예정이다.
운서동 카페거리의 집. 남석훈(78) 씨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다음 목적지를 가늠한다. 여의도 국회사무처 2급으로 정년퇴직한 뒤 그의 일상은 공항에서 다시 시작됐다. 아내 양문심(68) 씨는 커피를 내려 식탁에 올려놓으며 묻는다.
“이번엔 어디로 가요?”
“마음 가는 데로. 우린 늘 그렇게 갔잖아.”
호주로 자녀를 유학 보내며 자연스레 시작된 여행은 퇴직 후 본격적인 삶의 방식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나라를 다니며 짧게 훑지 않는다. 오래 머물며 본다.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숙소에서 밥을 해 먹는다. 자유여행이라 가장 경제적이기도 하다.
중국은 가장 많이 찾은 나라다. “정말 많이 달라졌어. 천지개벽이지.” 거리마다 안내 표지가 생기고, 도시의 얼굴도 빠르게 변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버스를 타기 전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다. 정주에서는 무심코 버스에 올랐다가 제지당한 적도 있다. 변화와 통제가 함께 움직이는 풍경이었다.
독일에서는 언어가 막혔다. 15년 전쯤 차를 렌트해 지도를 보며 골목을 돌다가 길을 잃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남편은 손짓과 표정으로 길을 물었고 상대는 긴 설명으로 답했다. 서로의 말은 달랐지만 방향은 통했다.
“그땐 조금 막막했죠.”
“그래도 결국은 다 찾아갔잖아.”
미국의 국립공원은 17곳을 다녔다. 말로 옮기기 어려운 광활함 앞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해양 사파리에서 웅장한 고래를 직접 볼 수 있었고 물가가 비교적 저렴해 오랜 기간 머물며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유럽은 여름이 좋다. 북유럽은 6~7월이 성수기며, 대체로 3~5월은 비교적 한산하다. 경험이 쌓이며 계절 감각도 생겼다. 부부는 돌로미티에서 마주한 풍경은 아직도 자주 떠오른다며 이탈리아 북동부 알프스 끝자락 바위 능선과 초원이 겹쳐진 그 자리의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거긴 정말 잊히질 않아요.”
“사진으론 다 담기지 않지.”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사이의 트루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가바트는 폐쇄적이고 통제된 분위기 속에서 흰색 대리석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 나라 대통령이 하얀색을 좋아해 도시를 하얗게 만들었다고 한다. 천연가스와 석유가 풍부해 가스비는 무료였고 물가는 저렴했지만 사회는 굳게 닫혀 있었다고 한다.
유럽 문화는 점점 비슷해진다고 남편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와 관습은 여전히 다르다. 길거리나 건물 안에서 화장실을 찾기 어려운 도시도 많았다. 오래된 생활 방식의 흔적처럼 느껴졌단다.
여행 중 짐이 도착하지 않아 애를 먹은 적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시간을 지나며 더 단단해졌다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여행 다니면서 몸이 더 좋아졌어.”
“우리 사이도요.”
남편은 각 나라의 수도를 거의 외운다. 지도를 펴면 망설임 없이 짚어낸다. 아내는 일정 옆에 시장과 식료품점을 적는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제일 편하긴 해.”
“깨끗하고, 버스 환승도 잘 되고.”
그럼에도 다시 비행기를 탄다. 낯선 공항, 처음 듣는 언어, 예상 밖의 풍경. 그것이 두 사람을 다시 설레게 한다. 스무 해 동안 이어진 자유여행. 정년 이후를 미루지 않고 꺼내 쓴 시간.
“다음엔 어디로 갈까요?”
남편이 웃는다.
“아직 안 가본 나라가 더 많잖아.”
창밖으로 비행기가 낮게 지나간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 하늘을 따른다. 그들의 지도에는 여전히 빈칸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