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동대 교직원인데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故 김영길 총장님에 관련된 목회 단상을 읽고 감사의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총장님 사모님도 크게 기뻐하시리라며 통화 내용과 글을 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글재주가 없어 매주 ‘목회단상’ 때문에 ‘목회 힘들다’며 투덜거렸는데, 뜻밖의 전화에 잠시 격려가 되었습니다. 격려 때문인지, 부활절 글 소재가 정해졌기 때문인지, 내일 맞이할 VIP들을 향한 기대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울리지 않게 꽃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피라미드 발굴 중에 꽃을 손에 쥔 미라를 발견했습니다. 외부의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꽃은 산산이 부서지고 꽃씨만 남았습니다. 삼천 년이 넘은 그 씨를 영국으로 가져와서 심었는데 싹이 트고 줄기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그 꽃의 이름을 식물학자 이름을 따서 ‘다알’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알리아’라고 부르는 꽃입니다. 생명 있는 씨앗은 언젠가 다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지 않아도 아름답게 다시 태어날 수 있기에 ‘다알리아’는 부활을 연상케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것들이 있습니다. 재산, 권력, 명예, 그런 것은 생명이 없기에 붙들고 집착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람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내 안에 부활의 씨앗이 있다면 언젠가는 어둠을 떨치고 영원히 아름다운 꽃으로 피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 부활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26)
#2. “죽은 자에게 바칠 꽃을 들고 서 있는데 / 벌이 날아와 앉네”
‘조문’이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인연을 맺어왔던 이의 죽음 앞에서 숙연히 조문 순서를 기다리는데, 생뚱맞게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꽃향기를 탐한다는 내용입니다. 꺾여진 한 송이 꽃조차도 누군가 위로하며, 또 다른 생명을 부르는데, 과연 내 삶의 의미를 알고, 목적에 맞는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연히 세상에 와서 살 만큼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속에는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그 우연들을 연결하는 뚜렷한 목적이나 일관된 서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삶이 ‘창조-타락-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뚜렷한 계획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인생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여 가는 여정입니다. 만나는 모든 일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관된 서사(섭리)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 풍파나 삶의 부조리 앞에서, 답답한 시간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의 부르시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찾아갈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세상이 불안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서 길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죽은 자 앞에 바쳐진 한 송이 국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연한 존재가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