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오후,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진다. 미끄럼틀 아래 모래를 쥐고 작은 세상을 만드는 아이들 사이,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이야기를 건네며 작은 손을 잡아주는 사람. 올해 예순여덟의 아이돌보미 홍원숙 씨다.
그의 모습은 꾸미지 않아도 편안하다. 오래도록 몸에 밴 습관처럼, 돌봄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아이들이랑 노는 시간이 제일 즐거워요. 여기 나오면 제가 더 밝아지는 것 같아요.”
짧은 말이지만, 지금의 삶을 온전히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홍 씨는 20여 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해왔다. 지역 곳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만나며 그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지금의 삶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은 자녀를 키워온 기억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보며 남들보다 더 오래 기다리고, 더 세심하게 살피는 법을 배웠다. 그 경험은 이후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이 됐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돼요. 빨리 되는 것보다 아이가 자기 속도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죠.”
눈가가 살짝 젖어든 채 건네는 이 말에는 오랜 시간 쌓인 삶의 결이 담겨 있다.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회복지 일을 하며 엑셀과 한글, 정리수납 등 10여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처음엔 일 때문에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계속 배우는 게 좋더라고요. 나이하고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요.”
환하게 웃으며 다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특히 정리수납 자격증은 그의 삶에 또 다른 방향을 열어주었다. 단순한 공간 정리를 넘어, 삶을 정리하는 일로 확장됐다. 우울로 일상이 무너진 가정,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의 집을 찾아 조용한 봉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정리를 해드리러 가지만, 오히려 제가 더 배우고 옵니다.”
그에게 봉사는 일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대한적십자 등 다양한 봉사활동 역시 특별한 계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흐름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아이돌보미라는 직업도 그 연장선에 있다.
“결국 사람을 돌보는 일이잖아요. 제가 해오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담담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긴 시간의 경험과 신념이 담겨 있다.
돌봄의 현장에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는 한 목사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던 일을 떠올렸다. 어느 날 아이가 장난감을 꼭 쥔 채 다가와 말했다.
“기도해야 해요.”
작은 손에 이끌려 두 손을 모았고, 기도가 끝나자 아이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그 짧은 순간은 오래도록 그의 마음에 남아 있다. 돌봄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지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놀이터로 다시 시선을 옮기면, 하루는 조용히 저물어 간다. 해가 기울고 아이들의 웃음도 잦아든다.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홍원숙 씨는 마지막까지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넨다. 특별한 말은 없다. 다만 늘 그래왔듯, 따뜻한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뿐이다.
그에게 봉사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기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오늘도 변함없이,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