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7(금)

맛이 있는 섬, 조름도를 다녀와서

- 피천득,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를 오마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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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6.03.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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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름도.jpg

용유해변 앞 조름도는 주름섬이라고도 불리며 물이 빠지는 간조시간에는 걸어갈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아드아재


피천득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투명해진다. 특히 1월이 되면 이미 새봄이 온 것이라 말하던 그 '신춘(新春)'의 문장이 참 좋았다. 유난히 추웠던 올 1월,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도 사실은 이미 봄이 시작되었다고 믿게 해준 그 구절은 내게 따스한 플라세보(Placebo) 같은 위로였다.


3월의 첫날인 오늘, 이제는 명실상부한 본격적인 봄이다. 우리 곁에는 신춘(新春), 조춘(早春), 입춘(立春)처럼 봄을 맞이하는 이름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그만큼 우리가 긴 겨울 내내 간절히 봄을 기다려왔다는 증거이자, 설레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용유도 해안가를 달리다 보면, 혹은 해안도로를 빙그르르 돌다 보면 위치에 따라 다른 각도로 얼굴을 내미는 섬 하나가 있다. 바로 조름도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참 '맛이 있는' 섬이다. 내게 조름도는 화려한 멋보다는 간이 딱 떨어지는 맛으로 다가오는 섬이다.


조름도에 이르러 춘곤증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조금 작위적인 연결이었을까. 하지만 섬의 이름마저 사람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조름도'라니, 이 봄기운과 섬의 이름을 연결하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간조 시간에 맞추어 바다가 길을 내어주면,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처럼 물길이 열린다. 이곳은 고운 모래의 하나개 해변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거친 돌과 날카로운 굴껍데기들이 울퉁불퉁 쌓여 있어, 맨발로 걷는 어싱(Earthing)보다는 단단한 신발을 갖춘 트레킹이 어울리는 곳이다.

 

섬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자연이 빚어놓은 조각상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간절히 기도하는 형상의 바위, 머리만 빼꼼히 내민 귀여운 미어캣 바위, 금방이라도 뒤뚱거리며 걸어 나올 듯한 펭귄 바위까지. 그야말로 파도와 바람이 깎아 만든 거대한 '바위 박물관'이다. 섬 한 바퀴를 오롯이 도는 데 걸리는 20분 남짓한 시간은, 현실의 소란을 잠시 잊기에 더없이 적격인 여정이다.


멋과 맛이 공존하는 영종의 선물

 

하나개가 화려한 '멋'이 있다면, 조름도는 소박한 '맛'이 있다. 하나개에서의 어싱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꿈결 같은 시간이라면, 조름도에서의 트레킹은 발바닥에 닿는 감각이 생생한 현실의 기쁨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종도라는 이 너른 품 안에 '멋'과 '맛'이 사이좋게 공존한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우리는 이 섬들 사이를 거닐며 소소한 기쁨을 발견하고, 자연이 내어주는 반사적 광영(光榮)을 온몸으로 누린다. 

 

정원썸.jpg
서정원의 영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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