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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6.04.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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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jpg
목련꽃 흐드러진 영종진공원.

 

벚꽃 Ending 목련 Landing (ft. 목련아 반가워)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라고 했던가. 중년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 내게 벚꽃의 만개는 마치 '내일 따위는 오지 않아도 좋다'며 온몸을 사르는 무모한 불꽃놀이 같았다. 그 찬란함은 지독히도 탐미적이라, 일본 소설가 카지이 모토지로가 쓴 《벚꽃 나무 아래에는》의 서늘한 첫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벚꽃 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이것은 믿어도 좋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아름답게 벚꽃이 그냥 피어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토록 비현실적인 화려함 뒤에 죽음 같은 허무를 숨긴 벚꽃은, 어느 때 어디서 보아도 내 눈을 의심케 할 만큼 아찔한 잔상으로 남았다. 

 

반면 백목련은 내게 줄곧 외면받던 꽃이었다.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는 그 꽃말이 청승맞게 느껴졌고,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이라며 흐르는 그 유명한 노래마저도 지독한 신파라며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나 영종에서 맞이한 봄은 나의 오만을 깨뜨렸다. 영종진공원에서 처음 마주한 대목련의 개화. 그것은 벚꽃과는 또 다른 층위의 비현실적인 목련의 자태였다. 

 

내가 참 좋아하는 시인 복효근은 〈목련꽃 브라자〉라는 시에서 목련의 생명력을 이렇게 노래했었다.


"눈부신 확신에 찬 저 젖망울들 / 만지지 않아도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 목련 꽃잎들이 하늘을 향해 / 일제히 벙글어 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솔직히 그때도 목련을 아련하게 본 적은 없었다. 다만 참으로 흥미로운 비유라고만 여겼을 뿐. 

그런데 영종진의 목련은 달랐다. '대목련'이라 불릴 만큼 그 기세가 당당하여, 만개했을 때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가히 비현실적이었다.


벚꽃은 이제 내게 허무한 잔상으로 읽힌다. 피어 있을 때부터 눈물이 고이는 건, 아마도 나의 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으리라. 

 

줄곧 꽃이 지는 '낙화'만을 생각하며 불안해하던 내게, 영종진의 대목련은 말해주는 듯했다. 찰나의 화려함보다 더 깊고 단단하게 스스로를 지켜내는 고귀함이 있다고.


비바람에 쉽게 흩날리는 연약한 꽃잎이 아니라, 툭툭 불거진 가지마다 숭고한 정신처럼 받들어 올린 그 하얀 꽃봉오리들. 그래, 이 봄부터 난 벚꽃의 허무 대신 목련의 당당함을 찾으며 조금 더 일찍, 서둘러 봄을 가져보기로 재차 마음먹는다.

흩날리는 엔딩(Ending)이 아니라 내 삶에 묵직하게 뿌리내리는 랜딩(Landing).

 

안녕, 나의 목련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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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의 영종이야기 > 벚꽃 Ending 목련 L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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