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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2.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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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의 본질은 무엇일까?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지시체의 발산”으로 정의하였다. 한때 존재했던 진짜 대상에서 빛줄기가 나와 필름에 자취를 남긴 것이 사진이라는 것이다. 사진의 본질이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진의 출발 자체가 재현이라는 족쇄에서 화가들을 해방시키는 데서 시작된 것이었다. 사진(기)의 발명 이후 재현은 회화의 핵심 과제가 아니게 되었다. 회화는 재현이라는 기록의 영역을 사진에게 넘기고 감정의 영역, 즉 추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이처럼 사진의 본질이 재현이고, 사진이 재현을 위한 확고부동한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진은 재현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유가 무엇일까? 초창기 사진이 그랬듯이 혹시 회화를 닮으려는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1826년 프랑스의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에 의해 처음 사진이 발명된 이후, 사진은 끊임없이 독자적인 위상을 갖추려 노력했다. 사진을 미술의 보조 수단으로 한정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예술 장르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예술로서 인정받으려는 대표적인 움직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회화주의 사진(Pictorial Photography)이다. 이는 회화의 생산 원칙, 생산 과정을 사진의 생산 규범으로 삼은 것으로, 회화와 거의 비슷한 정신적 과정을 통해 사진도 생산된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는 것이었다. 결국 회화주의를 통해 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진이 회화에 복종함’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사진이 그림보다 아래에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회화주의의 한계를 넘어 사진 그 자체, 재현이라는 사진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예술로서 위상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1920년대 미국의 스트레이트 사진(Straight Photography)과 독일의 신객관주의 사진(New Objectivity Photography)이 그것이다.

사진이야기12.jpg

스트레이트와 신객관주의는 기록성과 재현성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사진 표현 방법이다. 예술 장르로서 회화에서 사진을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사진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했는데, 그게 재현에 기초한 기록성이고 어떠한 연출이나 효과 없이 피사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물론 스트레이트 사진과 신객관주의 사진이 지향하는 세계관은 다르지만, 정밀한 세부 묘사, 빛과 음영의 섬세한 재현, 풍부한 계조 표현, 육안의 능력을 뛰어넘는 깊은 심도를 사진적 재현의 특질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스트레이트 사진과 신객관주의 사진의 본질적 특성인 재현이 예술적 표현의 핵심이 되기 위해서는 피사체를 단순 모사하거나 복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이상, ‘메타 모사’로서 기능해야 하고, 피사체 고유의 외면적 기호에 새로운 ‘기의’를 입힐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육안으로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광경이지만, 사진을 통해 표현된 모습은 새롭고 낯선 이미지로 재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사진가의 시각이다. 어떠한 연출이나 변형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피사체 안에 감춰져 있거나 숨겨져 있는 요소를 짚어내, 그것을 재현이라는 표현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사진을 통해 드러난 이미지는 알레고리(구체적 대상을 통해 추상적 개념을 표현)로서 또는 낯섦으로 독자들에게 예술적 표현으로 수용된다.  

 

최근 국내 사진계에서 재현에 충실한, 소위 스트레이트 사진 작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가들의 전시에서 순수 재현 사진을 만나기 쉽지 않다. 장노출, 저속 셔터, 흔들린 이미지, 과도한 대비, 이미지 합성, 주관적 심정 표현 등 충실한 재현과는 거리가 있는 표현방법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이 문제가 있다거나 예술적 표현방법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록성과 창의적인 프레임 추구라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사진의 본질에 대한 소홀함이 확산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것이다. 회화와 동등한 위상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려 했던 사진의 지난한 노력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다큐 사진의 위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자기표현 주체로서 개인의 자각, 초상권 중시, 기본권 신장 등으로 다큐 사진의 핵심 피사체인 인물에 접근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인물이 풍경의 소품으로 전락해가는 경향마저 보인다. 그렇다고 다큐 사진의 정신과 가치까지 위축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진은 강력한 기록매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기록의 중요성은 간과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세밀하게 현실을 기록하고 시대상을 재해석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창의력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시각으로 피사체를 바라보고, 시대와 사회에 내포된 의미를 드러내는 사진 작업은 여전히 소중하다. 일상에서 무심코 마주치는 정물이나 소품에 대해서도 사진가의 창의적 시각을 통해 피사체 본래의 기능을 넘어 인간 생활에 스며든 삶의 낯선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은 가치가 있다.  

 

예술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항상 혁신적인 표현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필립 퍼커스는 “예술이란 관찰과 기록 사이의 좁고도 무한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진 예술가란 끊임없는 선택과 재해석의 결과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사물 자체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아직 재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기록정신은 존중되어야 하고 현실에 대한 사유와 재해석을 위한 창의적 재현 작업은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  

 

이호준(facebook.com/ighwns, ighwns@hanmail.net)

한양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직장을 다니며 취미로 사진 찍기를 즐기고 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2회 수상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4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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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사진이야기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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