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유중학교장 김 정 렬 (cooljy54daum.net)
민주주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1215년 영국의 존 왕이 귀족들의 강압에 못 이겨 승인한 ‘대헌장(Magna Carta)’라는 칙허장(勅許狀)과 접하게 된다. 의회주의 전통이 강한 영국 헌법의 기초가 된 최초의 문서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존 왕은 또 ‘땅을 일어버린 왕(John the lackland)’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국 영토였던 프랑스 노르망디와 그 밖의 영지를 프랑스왕 필립2세와 벌인 전쟁으로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도 이곳 역사에 그처럼 무능하여 학교의 문을 닫는데 기여한 학교장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소문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요즘에 듣기 싫은 질문이 있다. “용유중학교는 도서벽지 수당이 없어지고 승진점수도 줄어든다면서요?”라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매월 3만원씩 받아오던 도서벽지수당이 금년 7월 1일부터 없어지고 승진가산점도 내년 1월 1일부터 대폭적으로 줄어든다는 내용이다. 또, 학교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다른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코가 쏙 빠져’ 비슷한 말을 하면서 입을 삐쭉거린다. 이유를 물어본 바, 영종용유는 생활이 불편한 도서벽지가 아니고 생활여건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더 이상 벽지수당이나 승진가산점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조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정말 근무여건이 좋아 졌을까? 아직은 절대 아니다. 학교들이 규모가 작거나 영세하고 설립목적이 특수하여 혜택이 없으면 교직원들이 와서 근무하기를 꺼려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종대교’나 앞으로 개통예정인 ‘인천대교’라는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아도 올 수 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려면 비싼 통행료는 내야하는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리를 지날 때 돈을 내는 섬은 거의 없다. 인근에 있는 강화대교도 , 영흥대교도, 진도대교도, 거제대교도 통행료는 없다. 하지만 소형승용차도 인천에서 이곳을 왕복하려면 7,200원의 통행료를 내야하며, 1시간 30여분 동안 운전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는 왕복 14,800원을 내야한다. 버스요금도 부평이나 연수구에서 오려면 왕복 10,000여원이 든다. 시간상으로는 두시간이상이 걸린다. 또, 학교주변에는 문화시설이나 편의 시설은 아무 것도 없다. 식료품을 살 곳도 없다. 고기 몇 조각 사려면 큰 마음먹고 인천시내로 가거나 승용차로 공항신도시로 가야한다. 학교주변에 푸주간도 시장도 없기 때문이다. 약국도 병원도 없다. 편의시설이 조금 갖추어져있다는 공항신도시까지 직접 가는 대중 교통편도 없다. 갈아타야한다. 이런 불편으로 이곳 주민들은 집에 예금통장은 없어도 살수 있지만 승용차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교통사각지대이다. 공항신도시라고 해도 인천공항만 덩그러니 있지 도시기반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고 있다. 대신에 각종 개발로 이곳저곳이 공사 중이고 상처투성이다. 눈이나 비가 오면 질퍽질퍽하여 걸어 다니기 조차 힘들다. 심심하면 나오는 장밋빛 개발공약으로 지쳐버린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려고 하고 있다. 개발계획에 묶여 재산권행사도 못하고 관공서가 언제 제 모습을 갖추며 들어설지 ―모든 것이 엉거주춤한 상태이다.
더욱이 인근의 영흥도 , 강화도처럼 교직원들을 위한 사택도 없다. 주민들은 교직원의 일부라도 지역사회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밤늦게까지 이곳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싶어도 머무를 곳이 없다. 홍수나 폭설 그리고 학교행사 등으로 집에 갈 수 없을 때는 간이침대를 펴고 교장실에서 잠을 잔다. 왜냐하면 기상이 좋지 않은데도 밤늦게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비좁고 움푹 파인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사고 나기가 쉽다. 그래서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잡무를 처리하는 교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보다 ‘어서가세요. 차 조심하세요. 천천히 운전을 하세요’ 등의 잔소리를 한다.
특수지 근무수당 지급대상 등급조정은 해당기관인 학교에서 등급기준을 조사하여 올리면 제반여건을 고려하여 행정안전부에서 조정을 한다. 그리고 승진가산점부여를 위한 급지구분은 ‘도서벽지교육진흥법 제2조(도서벽지 정의)’의 규정에 의거하여 도서벽지교육진흥법 시행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가장 최근 개정은 교육인적자원부령 제877호(2006.4.4)에 의거하여 2006년 3월1일부터 현재까지 적용을 받고 있다. 이 규칙에 의거 우리학교는 ’다‘지역이다. 우리학교에 3년 동안 만기 근무를 하면 1.29라는 승진가산점을 받는다. 승진에 필요한 도서벽지 ,특수지, 유공교원 등의 점수의 총점이 2.50이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점수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리고 우리학교처럼 구성원이 소수인 학교의 교원들은 근무평점의 불이익을 감수해야한다. 인원수가 적기 때문에 급간점수차이가 크다. 만약에 ‘우’ 나 ‘미’ 를 받으면 앞으로 5년 이내에는 승진을 포기해야한다.
그래도, 이런 악조건에도 다소의 승진가산점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곳을 희망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만약 ‘등급외’로 분류되어 점수가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면 우리학교와 같은 소규모학교나 특수목적학교인 과학고, 국제고, 물류고는 지원할 교사가 없을 것이다. 혜택은 없는데 근무하기도 불편하고 교재연구도 교과지도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히 신규교사나 문제가 있는 교원 등 오기 싫은 사람들만 오게 될 것이다. 1년 근무하면 전보내신을 하여 다른 학교로 가려고만 할 것이다. 오래 머물지 않아 거쳐 가는 곳, 즉 ‘간이역(簡易驛)’이 될 것이 뻔하다. 학교가 양질의 교육을 못하면 지역사회가 학교를 외면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학생이 없으니 학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의 반세기동안 지역사회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역할을 하며 정신적인 고향이던 용유중학교가 없어진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곳은 혼과 역사가 사라진채, 학교건물은 다른 농어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사(牛舍)나 창고로 사용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교가 한번 없어지면 다시 문을 열기란 어렵다. 인천의 옛 명문학교들이 없어졌다가 다시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영종용유지역은 분명히 섬이다. 앞으로 15만 인구를 가진 레저관광도시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구상만 있지, 언제 누가 실행을 할지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계획은 없다. 언제 만들어 질지도 모르는 새로운 도시를 그리며 불편을 참고 견디며 살아야한다. 용유동사무소, 용유출장소, 우체국 등 관내 기관을 가보면 다른 지역에 있는 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하고 불편하다. 구내식당도 없어 사무실 책상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점심상을 차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래도 이곳 용유영종이 생활여건이 좋은 도시인가? 도시기반이 갖추어질 때 까지는 도서벽지근무수당이나 가산점이 있어야 한다. 쥐꼬리만한 도서벽지 수당 3만원일망정 우리에게는 자존심의 일부분이다. 다른 곳에서 아끼고 계속 주었으면 한다.
이곳 영종용유의주인은 주민들이다. 나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야하는 머슴일 뿐이다. 머슴들인 우리만을 위하여 점수나 수당이 존재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들이 양질의 교육이나 행정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양질의 인적자원의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영종용유지역이 도서벽지지역에서 제외되어 수당이 지급되지 않을 것이다’는 말은 잘못된 소문이기를 바란다. 벌써부터 사기가 저하되어 있는 선생님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프고 학교장으로서 죄를 지은 심정이다.
존왕이 ‘땅을 잃어버린 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역사 속에서 조롱당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무능하여 김정렬이라는 이름 대신에 ‘학교의 문 닫는데 일조한 교장’이라는 별칭을 얻기가 싫다.
늘 보던 역사책을 오늘따라 펼치기 싫어 긴 한숨만 내쉬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