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단상] 무례한 기독교가 되면 안 됩니다.
장윤석(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
[목회 단상]
무례한 기독교가 되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한 분 하나님, 유일한 구원자를 믿고 섬깁니다. 기독교 진리의 본질상 독선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 다원주의, 상대주의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진리 체계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하여는 타협이 없어야 하지만, 그 진리를 세상에 드러낼 때 무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과격하고 무례한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성경에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 개신교회는 독단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악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 이유 중 하나가 무례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타문화와 종교, 그리고 다른 가치관들을 너무 쉽게 폄훼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사에서 십자군 전쟁의 폐단을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힘으로 강요했던 실패한 역사이죠. ‘복음’을 받을래, ‘칼’을 받을래? 라는 방식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 안에 이런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정서가 세상에 표출될 때에 세상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거부합니다. 무례한 교회가 전하는 소식은 세상이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의 실현으로 세상에 오신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저주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초대교회도 엄청난 박해를 받으면서 반정부운동을 펼치거나 저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때리면 맞고, 용서하며 끝까지 진리를 드러냈습니다. 이런 사랑의 태도에 핍박하던 사람들이 감화를 받고, 거부하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교회의 이미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이것이 아닐까요?
풀러 신학교 총장을 지내신 리처드 마우 교수의 <무례한 기독교>라는 책을 보면, 진리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독교적 교양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소유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만큼 기독교적 교양이 필요합니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좋아야 합니다. 교회는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향한 기독교적 환대가 필요합니다. 성경 시대 유대인들처럼 진리를 소유하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세상과 더 많이 소통해야 합니다.
심판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마지막에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니,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정당하고, 세상은 모두 악하다 하지는 않았는지, 세상이 교회에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막고 담을 쌓고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교회는 세상을 복음 안에서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장래의 형제자매로 대해야 합니다. 무례한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적 교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신앙이 좋으면 예의도 발라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장윤석(하늘사랑의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