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야기
설교 10분 안에 교인들을 잠재우는 은사가 있는 어느 목사님은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집중하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유명 강사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강사님이 설교의 시작에 “저의 첫사랑은 지금의 저의 아내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곁에 없지만 아직도 그 품이 그립습니다” 라는 말에 긴장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저의 어머니입니다” 라고 하자, 청중들은 웃음보를 터뜨리며 한 사람도 졸지 않고 설교에 집중했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바로 저거야~’ 하고는, 다음 주일 설교를 “제게는 첫사랑이 있었습니다” 로 시작했습니다. 졸렸던 사람들이 집중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녀의 가슴이 그립습니다” 라고 하자, 사람들이 술렁이며 더욱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낯선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그녀는 저의 어머니’ 라는 멘트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기나긴 침묵 후, 대형 사고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잠만 깨워놓고 수습이 안 된 것입니다. 이처럼 첫사랑 이야기는 졸던 잠도 깨웁니다. 여러분의 첫사랑은 누구인가요? 아마 지금 사랑이 첫사랑이라고 대답하겠죠^^
신앙 세계의 첫사랑은 무엇일까요?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은혜로 감격스러웠던 순간들!
우리 신앙의 힘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청년 때에 신앙의 처음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은 제게 여러 가지 영적인 체험을 주셨습니다. 구름 위를 걷고 있는지 땅을 딛고 서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찬양 가사처럼 꽃들도 새들도 산들도 함께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기도 시간이 좋아서 밤늦게 기도 배낭을 메고 부산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꼭대기 바위틈을 찾곤 했습니다. 많은 회개를 했었고, 소년 때의 서원을 다시 꺼내게 되었습니다. 교회 일이라면 무엇이든 ‘아멘’으로 섬겼습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이 이런 것임을 그 사랑 안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주님과의 관계에서 첫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그 첫사랑을 잃어버릴 때 삶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앉아서 예배는 드립니다. 헌금도 드립니다. 종교적인 책임은 다하는데 감동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지겹고 불만스럽고 힘이 듭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으로 연합한 관계입니다. 관계에 금이 가면 수고하고 봉사해도, 그것이 무거운 짐이요 피곤한 일이 됩니다. 모든 사역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교회는 게으르지 않으려고 열심이었지만,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노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켜 너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계2:4-5)
추억 여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부생활을 하다가 애정이 식고 의리와 책임만 남아 탈진될 때 연애 시절 그 거리 그 찻집을 찾아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여행이죠. 우리 신앙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힘들고 지쳐서 탈진이 찾아올 때 우린 주님의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날 위해 고난 받으시고 생명 주신 진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통하여 처음 그 사랑을 회복하시고 예수님과 깊은 연합이 있으시길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