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며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지난 코로나 2년의 세월은 ‘숨 막히는 시간’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마스크 쓰기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도 물론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기독교 예배는 신앙고백, 기도, 찬송, 설교 등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당연히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숨이 막힙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더욱 답답합니다. 그것도 일상이 되니 적응이 된 듯합니다. 마음껏 숨 쉬며, 말할 수 있는 세상은 축복이었습니다.
마스크 착용 말고도, 코로나 이후 세상은 더욱 숨쉬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미국에서 흑인 피의자가 백인 경찰에 의해 목이 눌린 상태로 ‘숨을 쉴 수 없다’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숨이 막혀 죽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사건은 인종차별이라는 숨 막히는 미국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기독교 정신은 어디에 갔을까요?
곧이어 흑인들의 항의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그 시위는 방화와 약탈이라는 범죄로 바뀌었습니다. 특별히 교민들의 피해가 컸습니다. 건장한 흑인들이 동양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차별의 피해자가 차별의 가해자가 되며, 약탈과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모순적인 현실을 보면서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힙니다.
그 무렵 우리 사회에서는 계모에 의해서 여행용 가방 안에 아이가 몸을 접쳐서 갇혀 있다가 숨이 막혀 죽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가슴 아픕니다. 정치 현실을 보나, 남북관계를 보나, 국제정세를 보나, 숨이 막힙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핵시설을 공격하고, 질소탱크를 폭발시키고, 민간인들까지 무차별 살상하는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보면서 숨이 막히고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코로나와 전쟁의 장기화로 인하여 세계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먹구름 아래에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와 물가 급등,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 부담의 짐은 더욱 숨이 막히게 합니다.
그 외에도 생각하면 노동의 현장에도, 교육의 현장에도, 심지어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도 숨 막히는 일들은 너무 많습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의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한 말을 들을 때면 숨이 막힙니다.
이렇게 숨 막히는 세상이 된 것은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는 사회와 경제를 멈추게 했습니다.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멈출 때, 사람들은 인생의 본질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안식을 명하신 날입니다. 이날은 일을 멈추고 안식하며, 본질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영원의 시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자연과 현재 일들의 영적인 의미를 보게 됩니다. 쉼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배하며,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감동으로 호흡합니다. 그 호흡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숨 쉬게 하며,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거의 모든 방역 규제들이 다 풀렸습니다. 조금 더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