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 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을 가져오는 자세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분명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책임지는 자세입니다. 그것을 ‘주인의식’이라고 합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과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책임을 집니다.
예컨대,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며, 잔치가 잘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반면에 손님은 차려 놓은 음식만 먹습니다. 다른 잔칫집과 비교해서 맛 타령을 합니다. 일이 되든 말든 나와 상관없습니다. 편하고 부담 없기로 말하면 손님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누릴 기쁨과 영광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손님에게는 기쁨도 영광도 상급도 없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은 공동체는 발전합니다. 성도님들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인의식은 텃세를 부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분들도, 짧은 기간 머무는 분들도 주인의식을 가지세요. ‘이 교회, 저 교회’라고 하지 말고, ‘우리 교회’라고 말하세요. 교회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섬기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둘째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입니다. 그것을 ‘지체의식’이라고 합니다.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데, 눈, 코, 입, 팔다리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지체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썩어서 죽는 것 아닙니다. 다 건강해도, 뇌로 가는 핏줄 하나 터지거나, 췌장 같은 작은 기관에 암세포 생겨도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원에 심은 소나무의 솔잎은 사시사철 푸르러 보기 좋았고, 줄기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거친 껍질은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거친 껍질을 다 벗겨내고 나니 속이 하얗고 말끔한 것이 목욕한 것처럼 참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 소나무는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쓸모없는 것 같던 거친 소나무 껍질이 나무를 살리는 ‘생명 이불’ 이었던 것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생명 역사에 한 부분입니다. 누군가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교회는 부자든 가난하든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지체의식을 가진 사람은 공동체를 통한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누리게 됩니다.
셋째는 약한 자에 대한 배려의 자세입니다. 그것을 ‘가족의식’이라고 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고전12:26)
목만 부어도 온몸이 다 아프듯이, 아이가 열 40도를 오르내리며 끙끙 앓고 있는데, 부모가 코 골고 편히 잘 수 없습니다. 이마에 물수건을 대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은 가족입니다. “그 녀석 아빠 보다 잘났네”라는 말을 듣고 시기심을 가진 아빠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허물을 덮어줍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눕니다. 특별히 연약한 가족이 있다면, 더 배려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공동체가 약한 자를 향한 배려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줄 수 있다면 더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예수님도 한 분입니다. 세상은 한 분 하나님 안에서 가족이며, 무엇보다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소중한 가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