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 모든 것이 은혜, 모든 것을 감사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오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곳 추장과 마을 사람들은 새벽마다 동쪽을 향하여 무수히 절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매일 아침 무슨 제사를 드립니까?" "해님을 모셔 올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님을 모셔야 해님이 둥실 떠오르시고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저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성을 들여 제사를 드려야 해님이 떠오르고, 그런 후에야 자신들도 하루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미개하구나.’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정성을 들여서 받는 자세를 보아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는 선교사가 제안합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수탉이 그 일을 대신합니다. 여기서도 닭들에게 햇님을 모셔 올리는 일을 시키면, 당신들은 아주 편하게 될 것입니다."
설득 끝에 그렇게 해 보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수탉을 구해서 마을로 들여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제사 없이 초긴장 속에서 일출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수탉이 크게 홰를 치며 울어댔습니다. 그러나 해님은 무소식이었습니다. 수탉이 다시 한번 울어댔으나 역시 해님이 나타나지 않자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했습니다. "해님이 노하셔서 영영 안 나오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지?" 그때 다시 한번 닭이 목을 길게 늘여 울어대자, 해님이 방긋이 이마를 드러냈습니다.
만세! 환호성이 메아리쳤습니다. 이젠 우리가 새벽마다 고역을 겪지 않아도 되는구나! 부족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아침마다 그 기쁨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달이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루의 시간은 저절로 오는 것이지 전처럼 정성으로 받들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삶은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해님의 떠오름, 더 정확히 말하면 하루의 시작이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님의 떠오름을 기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연히 하루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루를 이와 같이 맞이하기 쉽습니다. 어김없이 아침이 오지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같은 하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를 새날로 빚으셔서 우리에게 선물해 주십니다. ‘은혜’라는 찬양 가사를 옮겨봅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는 모두 특별한 것입니다. 감사와 감격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특별한 하루하루의 이어짐입니다. 혹 마음에 감사가 사라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인생의 제로 점에서 서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나에게 특별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선물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