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토교통부 노조 서울지방항공청 지부장이자 항공특별위원장으로 헌신해 온 베테랑 항공관제사가 ‘감당 못 할 짐이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인천공항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짧은 한 문장이 얼마나 무거운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제 그 무게에 응답해야 한다.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 이 사건을 덮어버린다면 노동 현장의 잉태된 비극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항공관제사 정확히 말하면 항공교통관제사이다. 비행 중인 항공기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기동지역 내에서 항공기와 장애물 간에 사고 방지를 위해 관제를 한다. 항공기 흐름을 원활히 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이를 위해 조종사와 직접적인 무선통신으로 항공기 이·착륙 순서 및 시기와 비행의 방법을 지시하고 교통정보 등을 제공한다. 또한,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조종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바람의 방향, 속도, 가시거리, 사용 활주로 등 최신 공항 정보를 제공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쉽게 말해 하늘을 나는 수많은 생명을 책임지는 ‘눈’이자 ‘두뇌’를 담당하며 기상 급변, 긴급상황, 조종사의 혼선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하늘에서 국민의 생명을 담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처한 현실은 무관심과 방치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항공관제사들은 과도한 업무 강도와 인력 부족, 정서적 피로는 물론이고 야간 근무의 누적과 불안정한 고용조건 등을 호소해 왔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항공안전 혁신 방안에 담기지 못했다. 구조화된 무관심과 방치된 절규는 그들의 하늘을 산산히 무너뜨렸다.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과 공기업조차 이렇다면, 민간 사기업의 처우는 말해 무엇하랴.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이어가도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방치의 연속이었다.
고인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다. 그가 감당했을 시간을 생각하면 그저 참담하다. 이 죽음은 우연도, 개인의 심약함도 아니다. 구조 속에 예고된 결과이자 방조된 참사였다. 이번 사망 사건은 단순한 우연이나 개인의 심약함으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구조적인 무관심과 처우 외면이 만든 ‘직업적 트라우마’의 결과다. 공기업이라는 명함이 무색하게 이들의 노동은 고립되고 고통은 은폐되었다.
대통령은 최근 산업재해 현장을 찾아 직접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국가의 부재로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관제 인력의 적정 배치와 휴식권 보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 동시에 심리적 회복 지원은 물론이고 승진과 보상의 명확한 기준 등 구체적인 처우 개선책이 시급하다. 특히 현장의 일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고충 처리 시스템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더 이상 ‘정신력’만을 강조하며 희생을 미화하는 식의 접근은 멈춰야 한다.
더는 ‘조용한 절규’가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현장이 달라져야 한다. 오랜 시간 노동 운동의 현장을 지켜온 동지였고, 인천시 정무부시장 재임 시절엔 공항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 처우 개선과 조직문화 개선을 함께 고민해 왔기에 그가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았다는 사실은 한없이 무겁고 고통스럽다. 하늘은 혼자서는 지킬 수 없다. 그 곁을 지키는 이들에게도 마땅히 하늘이 되어 주어야 한다. 하늘을 지키는 이들의 곁에 국가가 함께 서야 한다.
'재해자의 불안정한 행동은 원인이 아니라 구조 속에 잉태된 결과'라는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취임사를 기억한다. 현장을 지켜내야 한다.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일하는 모든 이는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항공관제사도 예외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