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易地思之)
용유중학교장 김정렬(cooljy54@daum.net)
세상을 살다보면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여 짜증나기도하고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아 속이 상할 때가 있다. 또, 앞이 꽉 막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절망스러울 때도 있다. ‘내일의 태양은 다시 또 오를까’ 할 정도로 희망이 없을 때도 있다.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나서 아내 역할을 하면서 잔소리를 안 듣고 살아봤으면 하는 남편도 있고, 그와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자식을 키우다보면 ‘세상에 저런 놈이 내 뱃속에서 나왔을까’ 할 정도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꼴 보기 싫은 짓만 골라서 한다. 할 수 만 있다면 자식과 부모역할을 바꾸어보고 싶다. 직장에서도 이해를 구하려고 애를 써도 설득이 안 되고 점점 자기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사(上司)도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억지로 살다보면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일처리도 안되고 건전한 인간관계 유지가 어렵게 된다. 심하면 세상살이가 싫어지기까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만나 함께 일하고 살아야할 사람이라면 피할 수도 없고 할 일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지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이 닥쳐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을 때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그러면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씩 보인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속이 상할 때는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본다. ‘나는 어떠했는가.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반문해본다. 또, 오른 쪽에 있을 때는 왼쪽에 있을 때를, 부자일 때는 가난했을 때를, 몸이 아파 힘들 때는 건강할 때를, 여당(與黨)일 때는 야당(野黨)을 할 때를 , 배고플 때는 배부를 때를, 행복할 때는 불행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서 시점(視點)과 각도(角度)를 달리해본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내안에 있고 해결책도 내 안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남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점이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문제는 해결되지는 않고 점점 꼬여만 간다. 나를 행복하게도 하고 나를 풍요롭게도 하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내 자신의 눈높이와 시각이 잘못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을까. 내 스스로 평온과 조화로움을 유지할 때만이 다른 사람을 올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조화롭지 못한 인격체로서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파스칼은 “두개의 위험한 극단(極端)이 있다. 진리는 언제나 중용(中庸) 또는 중정(中正)에 있으며, 극단은 과오가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원로철학자인 안병욱선생은 조화로운 인간이 지녀야할 덕성으로 사서(司書)가운데 하나인 중용(中庸)에 나와 있는 지인용(智仁勇)을 들고 있다. 이세가지를 천하(天下)의 으뜸가는 덕(德)이라고 말하며 (智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 지(智)는 지혜(智慧)이고, 인(仁)은 사람이며, 용(勇)은 용기(勇氣)라고 한다. 올바른 판단과 인생의 나아갈 방향을 알기 위해서는 행동의 나침반이고 생활의 길잡이인 밝은 지(智)가 있어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智)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인(人)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은 사랑이며 덕성이라고 한다. 사람의 인간다움은 인에 있다고 한다. 사람(人)이 둘 모이면, 거기에는 인(仁), 즉 사랑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조화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지(智)와 인(仁)외에도 용기(勇氣)가 필요하다고 한다. 용은 씩씩한 기상이며 인간행동의 추진력이라고 한다. 아무리 밝은 판단을 내리고 착한 마음을 가져도 그 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용기는 인간의 실천적 에너지이며. 지인용(智仁勇)의 3가지 덕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진정한 인격을 구성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화로움을 실천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을 선택하기가 쉽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 의하여 끌려 다닐 수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불의를 묵인하고 정의의 반대편에 설수도 있다.
그러나 남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는지. 왜 학생들이 내 시간에 내말은 듣지 않고 딴 짓만 하는지. 왜 내 아내나 내 남편은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 동료나 부하 그리고 상사들이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나를 뒤돌아보거나 앞을 내다보며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해보고 올챙이 개구리시절’을 예견(豫見)해보면 모든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 “라는 말은 다원화되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갈등이 심화되는 우리사회에서 꼭 필요한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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