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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눈으로 사랑을 말해요
    개는 입으로 말을 못 합니다. 그래서인지 개는 사람에게 눈으로 말합니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서 새까맣고 큰 눈으로 주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반가움을 표합니다. 식사 때면 발치에 앉아 눈으로 ‘뭐라도 달라’고 말합니다. 물론 식탁 밑 그 눈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집에서 나 혼자인 것 같기는 하지만요. 동물과도 눈으로 무언의 대화와 감정을 나눌 수 있는데, 사람 간에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눈으로 말해요.?살짝이 말해요.?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눈으로 말해요”라는 노랫말도 있습니다. 눈으로 여러 사람 중에서 단둘이서만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의 눈빛으로 전 세계를 울릴 수도 있습니다. 한 해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사나 사진에 수여하는 퓰리처상이 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인물의 눈망울은 그 어떤 소리보다 더 큰 메시지를 세상에 던져주기도 합니다.   이지선 교수는 ‘지선아 사랑해’라는 간증집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대학생 시절 교통사고로 몸의 55%를 3도 화상을 입고, 40번의 대수술을 거치고서야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은 다 녹아내리고, 양손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은 다 절단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바로 지금이라고 말합니다. 굳이 다시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녀의 자존감이 흔들리지 않게 한 가장 중요한 경험은 눈빛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고 후 병원으로 옮겨져 화상 수술을 받고, 얼굴을 돌돌 감고 있던 붕대를 처음 풀던 날의 경험을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얼굴을 본 엄마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어요.”?사고 전이나 사고 후나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여전했다는 것. 한 존재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얼마나 그 존재에게 안정감을 주고 자존감을 부여하는지 깨닫게 하는 대목입니다.   어떤 분은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집에 누워 있는데, 부인이 빨래를 개라고 시켰답니다. 자신은 암 환자니까 이제 그런 일을 안 시킬 줄 알았답니다.?‘나 환자잖아~’?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산더미 같은 빨래를 자기 앞에 밀어주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고 합니다.    아이가 뛰어가다 넘어졌습니다. 넘어진 아이는 호들갑 떠는 부모를 보는 순간 울음보가 터집니다. 그러나 엄마가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면, 자기도 대수롭지 않은 듯 스스로 털고 일어난다고 합니다. 넘어지고 실패하고 약하고 서툰 못난 나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안정감은 나를 바라보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입니다. 그 눈빛을 느껴본 사람은 편해집니다. 그 안정감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언제나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잔잔히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빛입니다. 여러분, 느끼십니까! 저는 조용히 눈을 감으면 느낄 수 있습니다.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찬양을 불러보세요.?“하나님,?사랑의 눈으로!?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그 사랑의 눈빛으로 자녀를 바라본다면, 자녀는 안정감을 가지고 꿈을 향하여 도전할 것입니다. 그 눈빛으로 교인들이 서로를 바라본다면 교회는 안정감을 가지고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눈빛만 보아도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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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24
  •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교회
    교회 주보를 보면, 혼사와 장례 소식이 실립니다. 요즘은 혼사보다 장례 소식이 주보에 더 많이 실립니다. 인구추세로 보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개척 교회 때는 성도의 가정이 슬픔을 당할 때면 목사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더 많은 인원의 교인들이 장례예배에 참여한다면 더 큰 위로와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소수정예(?)로 가서 예배드릴 때가 많았지만 마음만큼은 정성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지난 주간은 장례가 두 군데가 겹쳐서 있었습니다. 한군데는 전라남도 곡성, 또 한군데는 강릉이었습니다. 곡성은 부교역자님과 청년들이 가고, 강릉은 제가 가서 장례를 집례하였습니다. 장례 기간 국토의 동서를 두 번 횡단하며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한마음으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슬픔을 당한 지체를 위로하는 모습에 개척 교회 때를 떠올리며 새삼 감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힘이 났습니다. 장례식장을 드나들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장례식을 교회에서 하면 어떨까?’ 요즘은 교회에서 교인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도 흔치 않아 보입니다. 최근 재벌가의 결혼식을 정동교회에서 올린 것이 뉴스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교인 집안의 결혼식은 대부분 교회에서 올렸고 당사자들도 충분한 시간 활용 및 신앙의 이유로 만족했었습니다. 좋은 전통은 다시 살려 나가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장례예배도 자신이 몸담고 섬겼던 교회에서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공로가 있는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장례예배를 교회장으로 치르는 경우는 있지만, 평신도의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성당 내 여건이 허락된다면 장례는 물론이고 성당 내 납골당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대형 성당의 예입니다. 개신교인들은 평생 교회를 다녀도 죽어서는 교회를 떠나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낸 후 떠납니다. 옆 빈소에서 들리는 타종교 예식, 곡소리, 향 냄새, 술 냄새, 심지어 화투 소리까지 어수선합니다. 예배드리는 한쪽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한담하는 것도 거슬립니다. 그래서 교회에서의 장례식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물론 신학적인 지지, 제반 시설 등 현실적으로 타당한 조건을 갖추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조건만 된다면, 평소 천국 복음을 듣고 많은 시간을 보내었던 자신의 교회에서 천국 환송까지 한다면 좀 더 평안한 마음으로 임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교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으며, 그로 인한 신앙적인 유익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교회가 교인의 마지막 길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그야말로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축복받으며 출생해서 애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영적 가족의 정서가 진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혼인 예배를 드리는 예식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천국으로 환송하는 장례 공간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고, 당장 실현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공동체임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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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3

실시간 목회단상 기사

  • 목회단상 > 루돌프 사슴코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메리~크리스마스~! 교회마다 거리마다 다시 성탄절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예수님 탄생은 온 세상에 기쁨이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성탄의 기쁨이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함께 하길 축복합니다. 성탄절 전날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산책로 옆 산 저쪽에 불이 났습니다. 그때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산타 할아버지!“라고, 소리쳤답니다. 제 가족들이 이 글을 보면 ‘날씨도 추운데 더 춥게 만든다.’라고 타박을 먹을 것 같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탄 시즌, 들뜬 기분에 하나 더! 북극지방 얼음마을에 예쁜 사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뜹니다. 이유인즉슨,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를 누가 끄나? 입니다. 사슴들은 그해 산타 썰매를 끄는 일에 선발되기 위해서 미리부터 달리기 연습도 하고 다이어트도 하는 등 야단이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발되어 썰매를 끌게 되면, 일약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칭기즈칸’입니다. 다리가 튼튼하고 용맹스러운 데다 맹훈련까지 하고 있습니다. 정작 칭기즈칸은 ‘베토벤이 문제야. 그 친구는 평소에 콩나물을 많이 먹어서 리듬을 잘 타면서 달린단 말이야...’라며 내심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쟁쟁한 사슴들 사이로 웬 볼품없는 사슴이 등장합니다. ‘아니 저게 누구야! 야! 루돌프 사슴코 여긴 웬일이야.’ 루돌프는 뚱뚱보에다, 딸기코에다 아주 볼품없는 사슴이었습니다. ‘어디 스타들 겨루는데, 끼어들어!’라며 모두가 핀잔을 주었습니다. 사슴들은 루돌프를 놀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루돌프 사슴코는 주먹코에다가, 정말 붉은 코라, 붉은 전구를 꽂아 놓은 것처럼 반짝였습니다. 드디어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그날따라 안개가 많고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큰일 났네, 이렇게 안개가 많이 끼어서 앞이 안 보이니,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옳지, 루돌프가 있었지, 루돌프 코는 매우 반짝이니까 짙은 안개 속에서도 잘 달릴 거야’. 그리고 노래를 부릅니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래서 사슴들의 예상을 뒤집어엎고, 칭기즈칸, 베토벤 등 뛰어난 선배들을 물리치고 루돌프가 선발되었습니다. 볼품없고, 외로운 루돌프가 안개 때문에 올해의 성탄절, 산타의 썰매를 끄는 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노래가 들려옵니다. ‘그 후론 사슴들도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여러분! 한계에 부딪혀 실망하지 마십시오. 안개와 같은 현실 문제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딸기코, 주먹코, 뚱뚱보 루돌프도 그 안개 때문에 스타가 된 것처럼, 우리 인생의 앞날에도 오히려 그 안개 때문에, 돈 많고 똑똑한 사람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 오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에 믿고 모신 사람은 구원받게 되며, 영원히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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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12-20
  • 목회단상 > 믿음의 결국은 해피엔딩입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2023년도 달력도 마지막 한 장 남겨 놓았습니다. 미국의 어떤 광고 영상에 보면,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그네에 태워 밀어주고 있습니다. 아들이 그네를 타고 앞으로 밀려 나갔다가 다시 뒤로 왔을 때는 80킬로그램 나가는 덩치 큰 소년으로 돌아왔고, 그네에 치여 아버지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삶은 매우 빠르게 흘러갑니다’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자녀들 커가는 것을 보면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이 있듯이, 인생도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고통도 불행도 생기지 않는 것처럼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병든 자여 다 이리로 오라’ ‘불행한 자여 다 이리로 오라’ 외칩니다. 예수 믿으면 병도 낫고 불행한 일을 만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질병과 사고는 사람 가리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고통이 있고 불행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기복신앙을 질타하며 고난의 길을 자처하며 걸어갈 것을 촉구합니다.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믿음의 결국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희노애락이 다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을 소개하며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멀리 보는 것이며, 해피엔딩이라는 뜻입니다. 살면서 선한 일을 하다가 오해받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며 전도하다가 고발당합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며 발에는 쇠고랑을 차게 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깊은 절망과 낙심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바울의 처지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깜깜한 터널이라도 끝에 이르면 밝은 빛으로 나오게 됩니다. 감옥에 있는 그 순간만큼은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 감옥 속에서 간수장과 여러 사람을 살렸습니다. 고통의 시간에 값진 의미가 부여되고,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을 행하다 낙담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고난을 많이 겪었던 욥도 고난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안이숙 여사의 책 ‘죽으면 죽으리라’를 보면, 일본 제국과 맞서 싸우다가 형무소에 구속되고 모진 추위와 고문에도 기도와 찬송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1945년 사형집행을 몇 시간 앞두고 8.15광복을 맞아 기적같이 출옥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과 음악을 전공한 뒤 책을 집필하고 집회를 다녔습니다. 아시다시피 욥도 이전보다 더 풍성한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믿음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입니다. 인생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주 예수를 믿는 바른 믿음을 점검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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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12-13
  • 목회단상 > 어린 소녀의 감사
        오늘은 ‘새생명 축제’가 있는 주일입니다. 누군가의 초대로 어렵사리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새로운 만남은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합니다. 모든 교우들이 사랑으로 기다려 왔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꽃장식도 하고, 풍선도 붙이고, 음식도 만들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초대되신 분들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저도 매주 주보에 싣는 ‘목회단상’ 코너에, 어떤 글로 환영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마침 교육부서에서 카톡으로 보내온 어린 학생이 쓴 자작시를 보았습니다. 저의 글쓰기를 포기하고 ‘어린 소녀의 감사시’를 소개하고 싶어서 옮깁니다. 소녀가 초등5학년 때에 자작한 시인데, 당시 엄마의 암수술로 가족이 힘든 시기였다고 하네요.  <어린 소녀의 감사> 타인의 불행이 내게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기는게 감사라면 나의 감사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조롱일 뿐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감사는 아닙니다 나의 감사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감사를 드리려 합니다. 세상에 가난과 전쟁과 불의가 가득함에 감사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우리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정의를 기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닌 것에 감사합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의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이 강남의 타워펠리스가 아닌것에 감사합니다.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을 찾아 오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빠가 권력자가 아닌것에 감사합니다. 아빠의 권력이 소망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만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엄마가 아프셔서 내가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에 감사합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우리 가족은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삼남매 중에 태어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양보하는 하나님의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교 1등을 하는 지식의 사람이 아닌것에 감사합니다. 세상의 지식으로 교만하지 않고 지혜의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것에 감사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나의 찬양의 대상이며 나의 서투른 선율을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랑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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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6
  • 목회단상 > 모든 것이 은혜, 모든 것을 감사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오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곳 추장과 마을 사람들은 새벽마다 동쪽을 향하여 무수히 절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매일 아침 무슨 제사를 드립니까?" "해님을 모셔 올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님을 모셔야 해님이 둥실 떠오르시고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저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성을 들여 제사를 드려야 해님이 떠오르고, 그런 후에야 자신들도 하루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미개하구나.’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정성을 들여서 받는 자세를 보아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는 선교사가 제안합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수탉이 그 일을 대신합니다. 여기서도 닭들에게 햇님을 모셔 올리는 일을 시키면, 당신들은 아주 편하게 될 것입니다." 설득 끝에 그렇게 해 보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수탉을 구해서 마을로 들여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제사 없이 초긴장 속에서 일출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수탉이 크게 홰를 치며 울어댔습니다. 그러나 해님은 무소식이었습니다. 수탉이 다시 한번 울어댔으나 역시 해님이 나타나지 않자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했습니다. "해님이 노하셔서 영영 안 나오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지?" 그때 다시 한번 닭이 목을 길게 늘여 울어대자, 해님이 방긋이 이마를 드러냈습니다.   만세! 환호성이 메아리쳤습니다. 이젠 우리가 새벽마다 고역을 겪지 않아도 되는구나! 부족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아침마다 그 기쁨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달이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루의 시간은 저절로 오는 것이지 전처럼 정성으로 받들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삶은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해님의 떠오름, 더 정확히 말하면 하루의 시작이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님의 떠오름을 기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연히 하루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루를 이와 같이 맞이하기 쉽습니다. 어김없이 아침이 오지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같은 하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를 새날로 빚으셔서 우리에게 선물해 주십니다. ‘은혜’라는 찬양 가사를 옮겨봅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는 모두 특별한 것입니다. 감사와 감격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특별한 하루하루의 이어짐입니다. 혹 마음에 감사가 사라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인생의 제로 점에서 서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나에게 특별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선물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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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2
  • 목회단상> 산기도 다녀온 날의 행복한 단상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산기도 가는 날입니다. 단풍 드는 가을이라 큰맘 먹고 먼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강원도 치악산에 있는 수양관. 차가 밀려 예상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 때문에 두 시간 기도를 한 시간으로 줄였습니다. 멀리 와서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기도 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성령 충만해서 기도가 잘 되는 곳이어서 그런지 모두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쩌렁쩌렁 기도 소리에 마귀가 두려워 쫓겨가는 듯했습니다. 1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자 모두 아쉬워했습니다. 기도가 이렇게 잘되다니! 어떤 분은 “이젠 기도 1시간이 금방 지나가요.”라고 말씀합니다. 자~ 이젠 밥 먹으러 갑시다. 차를 타고 예약된 식당으로 갔습니다. 제천의 향토 맛집이라는 명판이 붙어있습니다. 단아한 한옥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황토와 나무 공예로 장식된 실내가 정겹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시장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장맛이 좋아서 그런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연신 ‘이것 좀 더 주세요, 이것도 좀 더 주세요’ 열심히 먹었습니다. 돌솥을 긁어서 숭늉까지 먹고 나니 세상 부럽지 않습니다. 자~ 이젠 먹었으니 단풍 구경 갑시다. 바로 곁에 ‘베론 성지’라고 하는 곳에 갔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은 이미 가을 색이 되어 눈요기가 되었습니다. 목적지에 내려 보니 아름다운 단풍과 낙엽이 쌓인 동산, 잔잔한 가톨릭 성가 소리까지, 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권사님들, 여기에 서 보세요. 자~찍습니다. 하나둘 찰칵!” 몇 발짝 더 가서 “여기도 한 번 서 보세요, 찍습니다. 찰칵” 찍어드리긴 했지만, 원체 그쪽으로는 똥손이라 잘 나올지 장담은 못 하지만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산과 나무를 아름답게 물들여 놓았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권사님들 모시고 나와서 기도도 하고, 밥도 먹고, 가을도 만끽하니 참 행복했습니다. 자~이젠 퇴근길 정체되기 전에 빨리 돌아갑시다. 속히 승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성도님이 정성껏 준비해 주신 간식 덕분에 여행길의 즐거움을 더 했습니다. 무엇보다, 요것조것 예쁜 포장지에 선물처럼 간식을 준비해 주신 분은 무려 ‘새가족’이었음에 감격이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 준비해 온 주먹밥과 찐 고구마까지 먹으며 지겨울 겨를 없이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종일 운전하고, 똥손의 사진사까지 자청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아름답고 화창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의 향수는 왠지 모를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라디오에서 조용필이 부른 ‘산장의 여인’이라는 가을 노래가 들립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 가사가 구슬픕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마음으로 가을을 노래하는 이도 있습니다. 송창식이 부른 ‘푸르른 날’이라는 노래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단풍이 드는 가을에 그리운 사람을 찾아보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처럼 같은 가을을 보며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가 합니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에 우리 신앙도 더 깊고 고운 성화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 추억을 나눌 뿐 아니라, 복음도 함께 나누는 행복한 가을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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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11-15
  • 목회단상 >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분들에게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2차 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인물이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치료’라는 심리치료법을 고안했다.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했다. 또 자살하려는 사람의 목에 걸려 있는 줄을 끊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빅터 프랭클은 두 사람의 자살을 막았던 일을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 자살 동기는 모두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지금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생명을 살리게 될 것이다. 자살하려 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과학자로, 책을 집필 중이었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이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책을 집필하는 일은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죽음의 수용소라 할지라도 인생에 무언가 기대할 것이 있다면 살려고 할 것이다. 두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프랭클은 수감자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생존의 의미’를 깨우쳐 주었다고 한다. ‘의미’를 찾지 못함은 곧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이 지긋한 의사 한 분이 우울증 때문에 빅터 프랭클에게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었다. 플랭클은 그에게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대답했다. “오! 세상에!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내에게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대신 지금 선생님이 그 고통을 안고 계십니다. 그 대가로 선생께서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일어서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악수를 청한 후 진료실을 나갔다고 한다. 오늘 우리도 현실이 어려울수록 더욱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를 찾아야 한다. 찾고자 하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근 10년 넘게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이 1위라고 한다. 반면 출산율은 꼴찌이다. 행복지수는 뒤에서 3번째로 낮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하나님은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사랑하시고, 그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을 회복시킨다.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는 순간 힘겨운 세상이라도 다 이겨내고 살 수 있는 “삶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11월/26일 새생명축제를 통하여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며, 인생의 방황을 마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값진 시간이 되길 소망해 본다.    
    • 칼럼
    • 목회단상
    2023-11-01
  • 목회단상 > 가장 중요한 그 무엇!
      살아가면서 아픔을 많이 겪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아픈 경험은 거의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아픔은 가장 큰 아픔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사고나 병이나 불행한 일을 당할 때, 그 아픔이 전달됩니다. 우리의 삶은 더불어 삶아갑니다. 아픔이 없을 순 없지만, 여전히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목사로서 저의 존재는 교회 안의 지체들이 있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성도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에 소속되면서 천국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그 새로운 정체성으로 서로 사랑하며, 세상을 향하여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있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혁신의 아이콘이자 애플의 전 CEO인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출생과 동시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무엇이든 완전히 통제하려 드는 그의 집착은 출생과 성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가 버림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교회도 다녀 보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지워 놓지 않는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저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는 1976년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합니다. 아이맥에 에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잇달아 성공시킴으로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2004년 췌장암 선고를 받습니다. 치열하고 긴 투병 끝에 결국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죽기 전에 “내 인생은 전형적인 성공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일 빼놓고는 즐거움이 없었다. 재산도 익숙해진 삶의 일부분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내 삶 전체를 회고해 보건대, 자부했던 그 많은 명성과 재산은 막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져서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의 명성과 재산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은 무엇일까요? 생명이죠. 죽음 이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준비이죠. 인간의 작은 두뇌로 창조주 하나님의 높은 뜻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 길만이 생명이요 영원한 행복의 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속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며,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11월 26일은 “새생명 축제”가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가졌지만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고백했던 것들을 인생의 목적 삼고 있는 주변의 소중한 분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있음을!    
    • 칼럼
    • 목회단상
    2023-10-18
  • 목회단상 >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하여 한 마을이 필요합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국력은 인구 숫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가 1인당 국민소득 5~6만 불, 아시아 1위이지만 한국, 일본, 중국의 국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인구 때문입니다. 인도는 열악한 사회환경 등으로 여행조차 꺼려지는 국가로 알려졌지만 장래가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인도 총리가 연설 중에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8억 명의 젊은이들이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평균 연령이 28세,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보면 총리의 말이 단순히 자찬은 아닙니다. 이에 비하여, 2023년 평균 출산율 0.78명, 인구절벽,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식스 포켓’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한 명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총 여섯 명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처럼 아이 보기 힘든 시대에 손주에게 아낌없이 지출하는 풍조를 알아차리고 어린이를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기업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집안에 아이 한 명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프리카 속담에도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라고 입을 모아 외칩니다. 하나님께서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생육과 번성이 곧 하나님의 꿈이며, 우리 사회의 힘과 미래가 됩니다. 사회는 가정 당, 한 명씩 있는 자녀들을 잘 기르기 위한 과열된 경쟁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관심은 믿음의 계승에 있어야 합니다. 신앙교육이란 말을 하면 사람들이 교회 교육 프로그램부터 떠올리겠지만 ‘신앙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형성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에서 신앙이 형성될 수 있는 장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양육은 실패하고 맙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어른들이 신앙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면 교육은 실패할 것입니다. 본을 보이는 것, 이것이 모든 교육의 기본입니다. 10월 세대 통합 예배를 드립니다. 3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가정도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처음으로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예배에 방해되니 따로 분리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신앙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눈높이 교육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어른들의 예배를 보고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자라면 저절로 다 할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본 것이 없으면 어른이 되어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자녀가 아니라도 우리의 자녀라는 생각을 꼭 가져 주십시오. 우리 교회의 자녀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 우리 미래의 자녀들입니다. 오늘 옆자리에 아이가 앉았다면, 귀에다 대고 “너 때문에 세상이 행복하단다.”라고 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관심 어린 눈빛과 다정한 말을 통해 아이의 신앙은 선하고 아름답게 자랍니다. 무엇보다 예배 중에 흐르는 영성이 아이들의 신앙을 형성합니다. 앞서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말씀드렸는데, 이는 우리가 그렇게 한 마을처럼 다 연결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 칼럼
    • 목회단상
    2023-10-11
  • 목회단상 > 행복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을 위한 말씀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그의 선택이 분명합니다. 특히 죄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습니다. 죄는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강합니다. 한 번 문을 열면 곳곳에 영향을 미칩니다. 심지어 시대를 넘나들며 영혼을 무너트립니다. 반면 행복의 파급력은 죄의 전염성을 넘어섭니다. 제아무리 죄의 어둠이 칠흑 같다 할지라도 한 줄기 빛이 비치면 어둠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의인의 길을 선택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비추는 햇살입니다.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 루터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종교개혁을 위해 100년 전 이미 한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체코의 얀 후스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교회가 진리 위에 설 것을 촉구합니다. 결국 후스는 고문당하고 화형에 처합니다. “오늘 당신들은 볼품없는 거위를 불에 태우지만,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당신들이 영원히 태워 없앨 수 없는 백조의 노랫소리를 듣게 될 것이오.” 그의 마지막 유언은 100년 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백조는 루터파의 상징 중 하나가 됩니다. 얀 후스 한 사람이 선택한 의인의 길이 루터에게로 연결되고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 죽음을 면하려고 내 믿음을 버리지 않게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직 일사각오가 있을 뿐이오니 이 목숨 아끼다 우리 주님 욕되지 않게 사망의 권세에서 나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사참배의 길에 서지 않고 의인의 길을 선택한 주기철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1940년 잠시 석방되신 후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생애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하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둘,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셋,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넷,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섯,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 뒤로 100년이 안 되어서 여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올바른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멈추지 않고 계속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100년 뒤에 누군가 받고 누려야 할 행복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얀 후스처럼, 주기철 목사님처럼 죄인의 길이 아니라 의인의 길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한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인 우리를 준비하십니다. 우리 가정이 신앙의 아름다운 계승을 이어가길 소원합니다.  
    • 칼럼
    • 목회단상
    2023-09-27
  • 목회단상 > 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을 가져오는 자세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분명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책임지는 자세입니다. 그것을 ‘주인의식’이라고 합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과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책임을 집니다. 예컨대,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며, 잔치가 잘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반면에 손님은 차려 놓은 음식만 먹습니다. 다른 잔칫집과 비교해서 맛 타령을 합니다. 일이 되든 말든 나와 상관없습니다. 편하고 부담 없기로 말하면 손님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누릴 기쁨과 영광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손님에게는 기쁨도 영광도 상급도 없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은 공동체는 발전합니다. 성도님들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인의식은 텃세를 부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분들도, 짧은 기간 머무는 분들도 주인의식을 가지세요. ‘이 교회, 저 교회’라고 하지 말고, ‘우리 교회’라고 말하세요. 교회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섬기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둘째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입니다. 그것을 ‘지체의식’이라고 합니다.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데, 눈, 코, 입, 팔다리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지체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썩어서 죽는 것 아닙니다. 다 건강해도, 뇌로 가는 핏줄 하나 터지거나, 췌장 같은 작은 기관에 암세포 생겨도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원에 심은 소나무의 솔잎은 사시사철 푸르러 보기 좋았고, 줄기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거친 껍질은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거친 껍질을 다 벗겨내고 나니 속이 하얗고 말끔한 것이 목욕한 것처럼 참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 소나무는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쓸모없는 것 같던 거친 소나무 껍질이 나무를 살리는 ‘생명 이불’ 이었던 것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생명 역사에 한 부분입니다. 누군가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교회는 부자든 가난하든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지체의식을 가진 사람은 공동체를 통한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누리게 됩니다.   셋째는 약한 자에 대한 배려의 자세입니다. 그것을 ‘가족의식’이라고 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고전12:26) 목만 부어도 온몸이 다 아프듯이, 아이가 열 40도를 오르내리며 끙끙 앓고 있는데, 부모가 코 골고 편히 잘 수 없습니다. 이마에 물수건을 대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은 가족입니다. “그 녀석 아빠 보다 잘났네”라는 말을 듣고 시기심을 가진 아빠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허물을 덮어줍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눕니다. 특별히 연약한 가족이 있다면, 더 배려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공동체가 약한 자를 향한 배려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줄 수 있다면 더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예수님도 한 분입니다. 세상은 한 분 하나님 안에서 가족이며, 무엇보다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소중한 가족입니다.
    • 칼럼
    • 목회단상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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